프리랜서, 1인창업, 마케팅

[책]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 서메리 지음

요즘 여자 2022. 5. 10. 19:16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프로 퇴사러

사실 저는 '프로 퇴사자'였습니다. 십 년, 이십 년씩 한 직장에서 장기근속을 하는 분들을 보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 같은 게 생깁니다. 물론 제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의 직장을 전전한 것이 백 퍼센트 제 선택이었다기엔 좀 억울한 면이 있긴 합니다. 정규직의 한정적 티오를 나눠먹기 해야 했던 저의 전공과, IMF라는 시대적 상황과, 현재를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으로 투자할 수 없던 집안 형편 등 여러 이유로 당장의 돈벌이에 급급하여 꽤 오랜 기간 비정규직을 전전하였습니다.

 

회사가 체질에 맞니 안 맞니하는 문제는 제겐 그저 사치스러운 고민이었죠. 긴 비정규직을 거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아가 쪼그라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함께 일하는 공간 안에 '신분이 다른' 두 존재가 함께 한다는 건 시도 때도 없는 차별을 감내하며 자괴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었어요. 때문에 정규직이 되어보는 게 지상의 목표였을 뿐, 내가 회사라는 조직에 맞는 존재인지 아닌지를 따져볼 여력은 없었습니다.

 

   정규직이 되다

긴 계약직 생활을 거쳐 직업의 직종을 바꾸고서야 처음 정규직으로 취업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바뀐 정규직이라는 신분은 낯설고 감격스러운 것이었어요. '이름 석자가 박힌 명함, 분기별 보너스, 퇴직금' 이 세 개가 직장 생활 내내 갖고 싶던 저의 정규직 로망이었습니다. 힘들게 얻게 된 정규직 신분인 만큼 회사에 뼈를 묻어야 하나 싶었지만 이내 전 깨닫게 되었는데요. 저에겐 필연적인 '역마살'이 있다는 걸 말이죠. 

 

이직 후 2~3년쯤 되니 슬금슬금 좀이 쑤셔왔어요. 제가 하는 일에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긴 했지만 어쨌든 저는 또 다른 곳으로의 이직을 준비합니다. 아무리 제가 다니던 회사가 대내외적으로 별로인 곳이었다고 해도, 그곳에서도 십 년 가까이 장기근속하는 분들이 계셨던 걸 보면 아무래도 잦은 이직은 제 개인의 문제지 싶었어요. 

그렇습니다. 어쩌면 저는 회사 체질이 아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회사 체질이 아닌 건지, 정규직 체질이 아닌 건지, 그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체질인 건지는 알 수 없어도 어쨌든 저는 명실상부 '프로 퇴사러'였습니다. 

 

   프리랜서를 선택합니다

이 책《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의 저자 역시 짧지만은 않은 직장생활을 거치며 '회사 체질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회사 밖에서 혼자 일할 자유를 누리기 위해 프리랜서가 됩니다. 단순히 일이 힘든 거라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희망 없는 회사 생활을 버텨내던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회사라는 조직과 맞지 않는 거라는 걸 깨닫게 돼요. 그리하여 이제는 당당히 이렇게 말하고 있죠.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라고요. 

 

프로퇴사러로 퇴사를 전전하다 어느덧 프리랜서(라고 쓰고 백수라 읽는) 삼 년 차에 접어든 저의 경험치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프리랜서의 '프리함'은 무엇보다 출퇴근의 자유를 말합니다. 남들 출근하는 러시아워에 콩나무 시루 같은 전철에 실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말이죠. 출퇴근의 자유는 프리랜서가 누리는 자유의 거의 전부이자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외 자잘하고 소소한 장점들이 있긴 하지만 직장이라는 조직에 매여 자유롭지 않은 직장인들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진 않아요. 

 

일이라는 게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기에 온전히 내 편의에 맞춰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다음 달 수입을 장담할 수 없기에 호기로운 지출을 하기가 망설여지죠. 프리랜서라 하면 한없이 게을러 퍼져 대중없이 일할 것 같지만 마감에 맞춰 일을 해내기 위해 나인 투 식스(9 to 6)의 직장인 못지않게 규칙적으로 일합니다. 하다 안되면 자정을 훌쩍 넘기는 자발적 야근도 마다하지 않아요. 각종 사회제도의 보호와 혜택을 받는 일도 까다로워서 수익을 꼼꼼히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따박따박 제 날짜면 통장에 꽂히는 월급의 힘은 무서워서 고정적인 급여가 없다는 생각은 사람을 한 없이 작아지게 만들곤 해요. 내가 일한 만큼만 버는, 그 에누리 없는 세계에서 불로소득 같은 건 꿈도 못 꿀 일이 되죠.

 

하지만, 이 모든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프리랜서'가 되기를 선택합니다. 조직 생활로부터의 자유, 혼자 일할 자유를 위한 어찌 보면 대가가 큰 선택이기도 해요.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특출난 기술 하나 없는 문과 출신으로 힘겹게 취직한 직장 생활에서 회사 체질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퇴사한 저자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분투합니다. 회사 밖에서 먹고사는 사람이 되자는 목표 하나로 먹고사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일 년 넘게 힘든 번역 공부를 착실히 했어요. 짬짬이 번역 아르바이트도 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 범위를 넓혀 프리랜서라는 광활한 황무지 속에 안착하기까지의 신산한 과정과 고충이 책 속에 꼼꼼히 기록돼있습니다.

 

사실은 프리랜서가 되는 일 자체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프리랜서로 '살아남는' 것이죠. 저자 역시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번역 공부를 해내고, 진짜 일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반백수의 막막한 시간을 '인내심'을 갖고 꿋꿋하게 버텨내요. 그 와중에 개인 브랜딩의 일환으로 간간히 그려보던 웹툰을 블로그에 올린 것을 계기로 예상치 못하게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할 기회도 얻게 되죠. 또 이 책을 포함한 몇 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중요 자질로 '책임감과 인내심'을 꼽고 있어요. 

 

책임감이 프리랜서의 친구인 성수기를 빛내 줄 자질이라면,
인내심은 프리랜서의 피할 수 없는 적인 비수기를 버티고 극복하게 해 줄 자질이다.
- 263p.

 

우리가 흔히 갖는 오해 중 하나는 프리랜서라 하면 뭔가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때문에 프리랜서를 꿈꾸면서도 자신에겐 그 정도의 능력은 없다는 생각에 지레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해요. 하지만 프리랜서의 절대 다수는 그저 평범한 직업인들이고, 다만 그들이 지닌 건 꾸준함과 노력, 무난한 기술과 약간의 차별성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단호히 말하건대, 체질은 잘못이 아니다.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너는 어째서 복숭아를 만지면
두드러기가 나느냐고 따져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 285p.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를 가진 채 복숭아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이 불행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 294p.

 

이 책은 퇴사 권장서가 아닙니다. 프리랜서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책은 더더욱 아니죠.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미워하는 대신, 세상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에요. 이미 프리랜서가 되어버린 사람이나, 복숭아 알레르기를 가진채 죄책감을 느끼며 복숭아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과 자상하고 단단한 위로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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